부활절이 먼저일까? 계란이 먼저일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절은 일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다. 하지만 부활절마다 등장하는 계란장식, 백합, 부활절 토끼와 같은 전통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다.

계란장식과 부활절의 관계

동방정교 전통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가 티베리우스 황제를 방문해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으로 계란을 보여줬다고 한다.

"한 일화는 황제가 흰색 계란이 붉은색 계란이 되는 것처럼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비웃자 계란이 붉은색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한가지 얘기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기 위해 처음부터 빨간색 계란이었다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집니다"라고 총회제자훈련부(GBOD) 예배자료 담당 디렉터인 Taylor W. Burton-Edwards 목사는 말한다.

동방정교의 초상화들에는 종종 빨간 계란이나 몰약이 담긴 병을 들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초상화들을 볼 수 있다. "도해법(Iconography)은 "이미지 그리기"(image painting)가 아닌 "이미지 쓰기"(image writing)를 의미하고, 이곳에서 "쓰여진"(written) 이미지란 사실적인 것을 그리기 보다는 생각과 신학을 전달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Burton-Edwards는 지적하고 있다. 계란은 그 자체로 이미 동방 문화에서는 새로운 삶의 상징이었다.

붉은 계란을 들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초상화 . A web-only photo  courtesy of creative commons. 붉은 계란을 들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초상화. A web-only photo courtesy of creative commons.

"그녀의 다른 한 손에 들려 있는 대개는 붉은 색조의 몰약이 담긴 병은 마리가아 예수님의 시신 매장을 하기 전 기름을 바르기 위해 무덤에 간 것을 상징합니다. (초상화를 통해) 죽음과 부활 모두 상징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마리아가) 두 가지를 모두 들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의 의미를 더 강조할 경우에는 (둘 중) 하나만 들고 있기도 합니다"라고 그는 덧붙인다.

계란에 색을 칠하고 장식을 하게 된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제국에서는 봄철 축제를 위해 계란에 색을 칠했다는 자료들도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아름답게 장식한 계란을 선물로 주었다. 러시아와 폴란드에서는 사람들이 계란에 정교한 모양을 그려 넣기 위해 여러 시간을 보냈다라고 Pamela Kennedy는 "부활절의 상징들"에 쓰고 있다. 미국 초기에는 아이들이 나무껍질, 열매, 잎사귀에서 추출한 염료로 계란에 색칠을 했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퍼졌을 때, "사람들은 계란을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돌무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새와 병아리들이 부화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약속하셨던 새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Kenney는 덧붙인다.

계란 찾기의 기원

영국, 독일, 몇몇 다른 나라에서는 예수님의 무덤을 가리고 있던 돌을 굴려 치우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부활절 아침에 아이들이 계란을 언덕 아래로 굴렸다. 영국에서 온 정착자들은 이 관습을 신세계로 가져왔다. 1814년 James Madison 대통령의 영부인인 Dolley Madison이 그 유명한 부활절 계란 굴리기를 시작했는데, 그 이후로 여전히 백악관 남쪽 뜰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부활절 토끼(Easter Bunny)와 성스러운 부활절이 어떻게 관련이 있었을까?

Kennedy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토끼가 봄에 풍성해지는 새 생명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부활절 토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두 소녀. A UMNS web-only photo courtesy of Danny Mai. 부활절 토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두 소녀. A UMNS web-only photo courtesy of Danny Mai.

"오래된 유럽의 한 전설에 의하면 토끼과의 일종인 산토끼(hare)는 눈을 절대 감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짐승들을 밤새도록 지켜본다고 해서 산토끼는 달을 상징하게 되었다. 보름달로 각 절기 날짜가 정해지기 때문에 토끼가 이후 부활절과 연관되게 되었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18세기 독일 정착민들이 아이들에게 부활절 토끼(Easter Bunny)로 알려져 있는 "Oschter Haws"를 미국에 들여왔다고 한다. 펜실베이니아의 네델란드 정착민들은 헛간과 정원에Oschter Haws를 위한 둥지를 마련했다. 부활절 전날 토끼는 그 둥지에 색칠한 계란을 낳았다. (독일에서는 부활절 토끼가 성목요일(Maundy Thursday)에 붉은색 계란을 낳는다.)

왜 묘지에서 부활절 새벽예배를 드릴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독일 작센지방의 헤른후트에 있던 한 모라비안 회중이 1732년 처음으로 부활절 새벽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한 철야 기도 후, 미혼 남자들이 다시 사신 주님께 찬양하는 찬송을 부르기 위해 마을 묘지로 갔다. 그 다음 해부터 전 회중이 그들과 합류했다.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이 전통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

Burton-Edwards 목사는 380년 시리아의 사도 헌장에 기록되었던 한 고대 전통을 인용하고 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묻혀 있던 묘지에서 성토요일(Holy Saturday)에 철야기도회를 가졌다.

"그리스도 안에 죽은 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부활을 기다리며 그 날 무덤에 계셨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제단 아래의 소리'가 "어느 때까지 입니까?"를 외치는 것과 자신들을 연관 지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추도식이나 망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 이상이었다. Burton-Edwards 목사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고 모든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고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그리스도 안에 죽은 자들을 지켜보는 진정한 철야기도"라고 부른다.

순결과 부활을 상징하는 하얀 부활절 백합.  A UMNS photo by Kathleen Barry. 순결과 부활을 상징하는 하얀 부활절 백합.
A UMNS photo by Kathleen Barry.

초대 기독교인들의 관행은 미국의 몇몇 전통으로 전해져 왔다. 남침례교단에서 성장한 Burton-Edwards 목사는 "우리는 정기적으로 부활절 아침에 큰 공동묘지에 모여 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고 죽은 자들의 부활을 기다리는 한 방법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백합이 어떻게 부활절의 백합이 되었나?

부활절 백합은 상대적으로 오래되지 않은 전통이다. 1882년 버뮤다에서 미국으로 전해졌다. 크고 아주 하얀 이 꽃은 기독교인들의 순결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한 새로운 삶을 상기시킨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꽃들이 슬픔과 연민으로 고개를 숙였다는 전설이 있다고 Kennedy는 쓰고 있다. "그렇지만 교만한 백합은 그 희고 사랑스러운 머리를 숙이지 않았답니다."

"다음 날, 그 백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이후로 백합은 주님인 예수님께 경의를 표하고 슬픔을 드러내기 위해 첫 번째 성금요일 이후부터는 꽃봉오리가 아래를 향하게 되었답니다."

글쓴이: Barbara Dunlap-Berg,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옮긴이: 김영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mail protected]
올린날: 2011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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