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웨슬리 목사 설교 전집 중에서, “아픈 사람을 심방”이라는 설교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19 가운데, 이 특별한 설교를 세밀하게 읽어야 할 가치가 있다. 그가 광범위하게 “마음이든 몸이든 고통의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이라고 정의한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의 설교는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의 삶에서 자비의 사역에 관해 가르치고 있다. ‘아픈 사람을 심방’하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에 웨슬리의 설교는 교회에서 돌봄과 연민의 사역의 중요성을 알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방법에 대해 창의적으로 생각하도록 하며, 자비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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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는 아픈 사람을 방문하는 일이 기독교인의 삶에서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임을 밝히면서 그의 설교를 시작한다. 이러한 “수단”을 통해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을 강하게 하고 하나님과 이웃 사랑에 변함없게 하는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 등한시되면 믿음은 “약하고 연약”하게 된다. 웨슬리에게 일반적으로 아픈 사람을 방문하는 것과 자비의 사역은 기독교인으로서 특별히 따로 하는 일이 아니다. 심방과 자비의 사역은 은혜가 신앙과 사랑 안에서 믿는 자들을 강건케 하기 위해서, 기도와 예배만큼 필요하다.
“[선한 일을 위하여 (에베소서 2:10)] 세상을 사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 ‘이미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믿음의 유지되는데 필요하다."
웨슬리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하는 일은 같았다. 이 때문에 아픈 사람을 방문하는 일이 지정된 소수에게 맡겨질 수 없다. 모든 기독교인은 고난에 직면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는 왜 모든 사람이 예수 그 자신을 위한 자비의 사역, 즉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투옥된 사람을 돌보는 일에 참여해야 하는지 강조한다. 섬김으로써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다가가고 이 은혜의 수단을 통해 성결케 된다.
모든 기독교인이 아픈 사람을 방문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반대한 ‘도울 사람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심방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웨슬리는 때때로 특별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그러한 특별한 상황에 대해서 “상황이 그렇다면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도움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썼다. 궁극적으로 환자의 안녕이 최우선 관심사이며, 신체적 접근이 금지된다면 상처받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오늘날의 전염병 속에서, 아픈 사람의 필요한 것에 대한 웨슬리의 조언은 더욱더 현명하다. 그리고 교회의 심방 사역은 이 ‘거리 두기’ 시기에 적응해야 하지만, 아픈 사람들의 신체적, 영적 요구를 만족시킨다는 그 초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이 심방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상황을 고려하면서 웨슬리는 설교의 나머지 부분에서 아픈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의 실제적 함께함이 필수적인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웨슬리는 기독교인들에게 고난에 처한 사람들과 실제로 함께하면서 그들이 병든 이웃에 대한 사랑에 확고하게 머물러 있다는 결과를 주장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지 않고는 “당신이 그들을 직접 도왔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동정심, 다정함, 인내, 그리고 겸손함을 당신은 경험할 수 없다.” 이웃의 고통을 보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불가피하게 이웃의 곤경에 대한 무지와 자기희생적 사랑의 부재로 이어진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는 속담은 웨슬리가 예견했던 아픈 사람을 심방하지 않을 때의 위험을 가장 잘 표현한다. 웨슬리에게 사랑이란 경험, 특히 이 경우 고통을 직접 보고 함께 하는 경험에서 태어난다.
오늘날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에 교회가 직면한 도전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교인들이 “은혜의 수단”을 잃지 않도록 어떻게 교인들이 상처 입은 이웃을 볼 수 있고 마음에 둘 수 있는가”이다. 흥미롭게도 웨슬리는 “잠시 방문하다”라는 뜻을 가진 “심방”이라는 단어의 어근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그리고 웨슬리의 시대에는 “방문”하려면 실제로 방문해야 했지만, 현대 기술 시대에서는 더 그럴 필요가 없다. 전염병의 상황을 고려할 때 질병을 전파할 위험 없이 다른 사람과 말하고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실제적 심방에 대한 영구적인 대안으로 줌(Zoom) 등의 기술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웨슬리에게 실제적 심방은 신체적 도움과 보살핌을 제공하고 연민을 느껴야 한다. 웨슬리는 누가복음 10:25-37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당한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을 향한 설교에서 이를 암시한다. 고통에 실제로 함께한다는 것은 구타당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동정심을 가지고 그의 안녕을 제공했던 사마리아인의 역할이라 가르친다.
웨슬리는 심방을 하기 전 기도로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방에 앞서, 심방하는 사람은 이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기 위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일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심방할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인도하고 고뇌, 분노, 낙담을 초래할 수 있는 고통 가운데 필요한 인내와 온유함을 제공함으로써 교인들이 봉사하도록 마음을 준비시킨다. 특히 아픈 사람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세요. 여러분이 그들의 영혼을 살릴지 누가 알겠습니까?”
아픈 사람을 방문할 때 해야 할 일은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을 위해 허락하신 재능을 분별해야 한다. 웨슬리가 생각하기에 재능은 어떤 사람에게는 육체적 필요나 노동을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조언을 주거나 제삼자가 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후자의 기회는 특히 대면 방문이 어려운 요즘 고려할 가치가 있다. 웨슬리는 기독인들이 “가난한 자를 위해 간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경우에는 성가시게 조르며 간청하세요-쉽게 부인하지 마십시오. 모든 말, 이해, 그리고 영향력을 모두 사용하십시오.” 결국 ‘사랑의 수고’를 통해 아픈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시작했다는 사실 만큼 하는 중요한 일은 없다.
아픈 사람에게 희망의 불꽃이 주어지면, 기독교인은 그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여기서도 특별한 상황이 심방에서 대화가 전개되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웨슬리의 주요 관심사는 그 아픈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 것이다. 웨슬리는 기독교인에게 “[하나님]은 당신이 겪는 모든 괴로움을 아십니다. 당신의 모든 고통을 아십니다. 당신이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당신의 고통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모든 특정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이 모든 것을 당신의 선을 위해 배치하지 않습니까?” [강조 추가]. 믿음의 가르침대로 병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영적인 치유를 얻는다.
웨슬리는 병자를 방문하는 사역하는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제로 돌아가서 설교를 마친다. 지금 그 대답은 분명하다. 예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모든 사람이 이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 웨슬리는 남녀노소,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가 자신의 독특한 은사를 사용하여 병든 사람들의 육체적, 영적 필요에 부응하도록 권고한다. 섬길 기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기회 또한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다. 아팠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 아픈 사람에게 나눌 지혜가 있다. 육체의 힘을 가진 사람은 힘이 없는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시간이 많은 사람은 심방할 시간이 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이 영광스러운 봉사에 참여”해야 한다. 여기서 웨슬리는 여성이 “함께 할 수 있지만 조용해야 한다.” 는 관념에 대해 특히 직접적으로 반대한다. 웨슬리는 성경과 초대 교회에 인용된 여성들의 사역을 바탕으로 여성들에게 “더 그 사악한 속박에 굴복하지 말라”고 촉구하며, 하나님께서 여성들에게 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부르신 것을 확신한다.
목회자와 교회 심방 팀에게 “아픈 사람을 방문”하는 것이 어려운 과제인 이 시기에 웨슬리의 설교는 심방할 때 창의적이고 오늘날 사역이 직면한 어려움을 인내하도록 격려의 말을 전한다. 병원과 요양원에 있는 교인들을 심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직계 가족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을 방문하기 어려운 시기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희망을 가져갈 필요가 크다. 코로나바이러스-19에도 불구하고 심방 사역은 계속되어야 한다.
원래는 2021년 1월 11일 웨슬리와 초기 감리교로부터 현재의 상황에 적용할 지혜를 추구하는 잡지 Firebrand에 게시되었다. 연합감리교회자료는 Firebrand와 저자 아담 먹클러로이 목사의 허락을 받아 다시 번역과 게시하였다.
아담 먹클러로이 목사는 텍사스주 캔톤에 있는 제일연합감리교회의 목사이며 퍼킨스 신학교에서 교회 역사를 전공하고 있다.
오천의 목사는 한인/아시아인 리더 자료를 담당하고 있는 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이다. [email protected]나 615) 742-5457로 연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