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린이 런치교회(Children’s Lunch Church)의 시작
첫 타인종 목회의 시작은 단어처럼 매우 낯선 표현으로 다가왔다. 나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외부인으로서 거주인의 목회자로 선다는 것은 매우 어색했다. 두려움도 내 안에 있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서 격려를 받고 위로를 받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자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훌륭한 성도들과 만남은 꽤 많은 힘과 이후의 사역 동기부여를 제공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낯선 관점을 갖고 있는 나에게 일상이 익숙한 성도들은 오히려 많은 영감을 얻는 듯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도들이 참 훌륭한 분들이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1) 교회 주변 상황(Demographic)을 파악
우리 교회는 백인이 다수인 동네에 있었다. 그러나, 등하굣길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놀이터에 노는 아이들을 보니 백인이 아닌 아이들이 더 많아 보였다. 잠시 생각했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도 놀면 어떨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아이들을 교회로 오게 할 만큼 교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허름한 교회로 놀러 오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올 만한 컨셉도 콘텐츠, 그리고 동역자도 없다는 것을 바로 인지했다. 가까운 놀이터와 교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 아이라도 놀이터를 선택할 것 같았다. 무기력한 생각이 들었고,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불가능해 보였던 아이들을 교회로 인도하겠다는 소망이 되살아 난 것은 몇 명의 어린이들과 만남이었다. 우연히 라틴계 친구들을 만나러 간 자리, 그 가정에 부모와 함께 있던 아이들을 만났다. 그 아이들은 놀 곳이 없었다. 부모가 일하다 보니, 아이들은 부모가 가는 곳에 언제나 함께 따라가야만 했다. 대부분 보육 시설에 맡길 수 없는 형편의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묵묵히 아이들을 보고 관찰을 하면서 내가 이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했다.
교회 평신도 임원들에게 이런 계획들을 나누었다. 구제 사역에 누구보다 앞장서시는 교인은 나의 이런 계획을 너무 좋아하셨다. 다만 본인들은 연세가 있으셔서 함께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함께 표현하셨다. 나는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드리며 이 사역을 스스로 메시처치(Messy Church) 혹은 메시 사역이라 부르며 시작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방문하며, 그들과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2) 교회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사역
그즈음, 연회에서 새로운 사역에 대한 아이디어 나눔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은 디너처치 사역으로 소개되었고, 실질적으로 디너 처치인 심플처치 연합감리교회(Simple Church UMC)를 개척해서 담임하는 잭 컬지(Zach Kerzee) 목사의 강연을 들었다. 주로 장년 사역에 대해 강연을 했고, 강의 말미에 아이들 사역도 하고 있다는 말했는데 아이들 사역(Pizza Church, Pancake Church)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때 디너처치 사역을 아이들 사역에 연결해 보고 싶은 마음의 깊은 감동이 있었다. 또 다른 디너처치인 뉴욕 브루클린의 성 리디아 디너처치(St. Lydia’s Dinner Church – Rev. Elsa Marty)에 현장 학습도 다녀왔다. 모든 예식(Ritual)이 인상적이었다. 어린이 사역으로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해보았다.
교회 임원회와 재단이사회에서 디너처치 모델을 나누며 어린이 사역에 적용할 수 있겠는지, 함께할 분들이 있겠는지 물어보았다. 주중 아이들은 학교에서 점심을 해결하지만, 토요일은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토요일 점심에 무언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고견이 있었다. 뭐라도 도울 수 있으면 자원하겠다고 말하는 성도들의 모습 속에서 힘을 얻었다. 그리고 토요일 점심시간 한번 시간 내서 이 사역의 시범운영을 해보고 반응이 좋으면 매달 1회 시작해보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3) 어린이 런치처치의 시작(Children’s Lunch Church)
토요일에 아이들을 교회로 초대했다. 그날은 집으로 방문하지 않을 테니, 교회로 오라고 했다. 교회에서 놀자고 했다. 순순하게 왔다. 막상 교회의 내부를 공개할 때 교회의 초라한 모습에 목회자로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교회의 초라함을 업신여기지 않았다. 어린아이와 같아지라는 주님의 말씀이 잠시 생각났다. 문득 나는 어린 시절, 잘 만들어진 놀이터보다 흉가를 더 좋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모임, 이 일에 매우 적극적으로 동참하시는 성도 한 명이 오래전 주일학교에서의 경험을 살려 성심껏 말씀 나눔을 준비하고 나누었다. 함께 놀고, 새 친구도 만나고,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 시간이 지나 집으로 갈 때가 되었을 때, 아이들이 “또 언제 다시 모이나요?”라고 묻는다. 자연스럽게 다음 모임을 조금 더 섬세하게 준비하게 되었다. 찬양과 말씀, 기도가 있었고, 식탁을 준비하여 함께 나누었다. 아이들은 매우 즐거워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범운영은 정기 모임으로 전환되었다.
작은 교회가 감당하기에 어린이 사역은 쉽지 않다. 자원봉사자 확보의 어려움과 재정적인 문제가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사역이다. 그러나 갈 곳 없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교회를 오는 즐거움으로 채워져 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꾸준히 토요 모임에 나왔다. 나는 성도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2019년 연말 송년 예배 때 아이들을 주일 예배로 초대했다. 사실은 초대라기보다 아주 오랜만에 장년과 어린이가 함께 드리는 연합예배였던 셈이다. 예배를 간소화하여, 어린이들이 중심이 되는 예배를 드렸다. 몇십 년 만에 주일 예배의 자리에 온 아이들의 모습을 본 성도들은 너무 기뻐하였다.
4) 유행병
나는 이 사역을 조금 더 확대해서 주변분들 몇 분과 나누기 시작했다. 특히 스페인어권 사람들에게 이 사역에 대해 알렸다. 이 사역에 대해 들은 목사님 내외분께서 봉사로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근방에 작은 가정교회를 사역하시는 라틴계 목사님 내외분이셨는데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시기 시작하시면서 조금 더 효과적인 조직운영과 재정적 기반을 세울 수 있었다.
융판과 그림을 이용한 성도님의 말씀 나눔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첨단 장비가 아닌 매우 오래된 방법인데 한 세대를 거치고 나니 이 방법도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융판과 그림에 반응하며 상황극을 함께 진행하는 모습을 볼 때 숨이 멎는 감동이 있었다.
입소문을 탄 사역은 그렇게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했다. 점점 자원봉사자들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고, 사역이 버거울 정도로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역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코로나바이러스-19라는 유행병이 찾아왔다. 한 달 후면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이 사역은 잠정 중단에 이르게 되었다. 사역을 중단한 지 3개월이 되었을 때는 무기력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이 사역을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부 유행병 동안의 어린이 런치처치
3부 어린이 런치처치의 미래
임희영 목사는 뉴저지 연회에서 3개 교회 – 린허스트(Lyndhurst UMC), 러더퍼드(Rutherford UMC), 퍼세이크 제일(KUMC at Passaic) 연합감리교회를 섬기며 또한 린허스트의 한인 회중까지 목회하고 있다. 주일에 4번(영어 세 번 한국어 한 번)의 예배를 드림에도 불구하고, 복음에서 소외된 교회 주변의 라틴계 어린이를 위해 어린이 런치처치를 개척하고 섬기고 있다.
오천의 목사는 한인/아시아인 리더 자료를 담당하고 있는 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이다. [email protected]나 615) 742-5457로연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