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 대한 웨슬리안의 이해

존 웨슬리의 초상화. 사진 제공: 연합감리교회 컬렉션, 드류 대학교 도서관.
존 웨슬리의 초상화. 사진 제공: 연합감리교회 컬렉션, 드류 대학교 도서관.

웨슬리안/감리교 신학과 실천의 중심에는 은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생생한 경험이 있다. 존과 찰스 웨슬리는 기독교 가르침과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은혜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면서 감리교 가르침과 설교의 특징이 되는 독특한 강조점을 제공했다. 연합감리교인과 웨슬리안 전통의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경험하고, 선포한 은혜는 18세기와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여전히 적절하고 변혁적이다.

두루알리미 광고 박스 이미지 연합감리교회 자료의 주간 e-뉴스레터인 <두루알리미>를 받아보시려면, 지금 신청하세요.

은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은혜를 하나님의 “풍부함 또는 호의”라 정의하며,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과분한 은총은 사람이 가장 작은 은혜라도 당연히 받을 수 없는 것이라 했다.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도, 그의 영혼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기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신 것도 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였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나, 소유나, 행하는 것들 중 어느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작은 것조차도 누릴 자격은 없기 때문이다.” 

연합감리교 장정은 은혜를 “항상 현존하시는 성령을 통해 인간 존재 안에 있는 하나님께서 과분하고 분에 넘치는 사랑의 행위”로 정의한다. 은혜는 모든 창조물에 만연하며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피조물에게 포장하여 주시는 선물이 아니다. 은혜는 인간의 마음과 공동체, 그리고 피조물 전체를 창조하고, 치유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은혜가 있다! 은혜는 피조물을 존재하게 했다. 은혜는 인류를 탄생시켰고, 우리에게 신성한 형상을 주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했으며, 모든 창조물을 연민과 정의, 관대함과 평화의 하나님의 통치 영역으로 항상 변화시키고 있다.

존 웨슬리는 “성경적 구원의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이라는 설교에서 어떻게 은혜가 인간 존재를 구원하고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요약했다. 1765년에 출판된 이 설교에는 이전 세 설교, 즉 “믿음에 의한 구원”, “믿음에 의한 칭의”, “마음의 할례”가 포함되어 있다. 웨슬리는 “성경적 구원의 길”에서 하나님의 창조, 치유, 화해 및 변화의 역사에 응답하는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한 독특한 강조점을 만드는 은혜의 세 가지 움직임 또는 표현을 설명한다.

선재적 은총: 앞서가는 은혜

하나님의 은혜의 한 가지 역동성 또는 표현은 선행 또는 “이미 앞서 행하신” 은혜이다. 웨슬리에 따르면, 선재적 은총은 “흔히‘자연적 양심’이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영혼 안에 형성되는 모든 것, ... ‘아버지’의 모든 ‘이끄심,’ 하나님을 향한 갈망, ...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나오게 된 모든 사람을 깨우치는 그 빛,’ 모든 사람에게 공의를 행하며 자비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자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것을’ 보여주는 것, 하나님의 영이 때때로 모든 인간 자녀에게 역사하시는 모든 확신이다.” 인간의 죄와 깨어짐의 심각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막는다고 믿었다.

선재적 은총은 모든 창조물, 즉 자연의 질서, 인간의 양심, 우리가 타고난 관계와 유산에 존재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 기독교 공동체, 성례전, 창조 그 자체, 죄책감의 고통,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으로 이끌림은 모두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의 표현이다.

웨슬리는 선재적 은총을 집의 현관으로 비유했다. 현관은 우리가 집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 은혜는 여행에 비유될 수도 있다. 여행을 시작하려는 욕구, 도로나 산길, 여행할 차량, 따라가야 할 지도는 모두 주어지거나 선물이다. 풍경의 아름다움, 여행을 계획하고 그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마음과 눈, 심지어 길을 개척한 탐험가도 모두 값없는 선물이자 은총이다!

하지만 집에는 현관보다 더 많은 장소가 있다! 여정에는 여행하고 싶은 마음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우리는 집에 들어가 보거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칭의의/구원의 은혜: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창조로 가는 문

선재적 은총은 칭의의 은혜를 위해 우리를 준비시킨다. 웨슬리는 “칭의는 용서의 또 다른 말”이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것이며 ...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임”이라고 말한다. 칭의의 은혜는 회개, 즉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인 새 생명을 향한 회개에서 나오는 용서의 확신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화해하고 재조정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속죄를받아들이는 것이다.

웨슬리는 칭의, 즉 칭의의 은혜를 하나님의 구원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자신과 화해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입양하시며, 사랑하는 아들과 딸로서의 정체성을 우리에게 부여하시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연합시키신다.

1738년 5월 24일 알더스게이트 거리(Aldersgate Street)에서의 경험에 대한 웨슬리의 설명은 아마도 칭의의 은혜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 같다. “9시 15분쯤에 그(지도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마음에 역사하시는 변화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한다는 것을 느꼈고, 그분이 나의 죄, 심지어 나 자신을 없애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속한 분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를 깨닫는 것이 칭의의 은혜의 본질이다. 그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행위로 얻을 수도 없고 우리가 빼앗길 수도 없는 정체성이다.

집으로 계속 비유하면, 칭의의 은혜는 출입구이자 그것을 통과하는 과정이다. 환영 팻말이 붙어 있는 문이 열려있다. 은혜를 여행에 비유한다면 여행자가 짐을 싸고 가이드와 함께 목적지를 향해 출발할 때가 온다. 그것이 바로 칭의의 은혜이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성화하는 은혜: 우리를 온전케 하는 은혜

은혜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는 용서하심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목표는 거룩한 형상의 완전한 회복과 모든 창조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 성화(sanctus,거룩에서 유래)는 성도가 칭의에 대한 응답으로 거룩해지고 온전해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장정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받아들임과 용서의 경이로움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끝내지 않으며, 은혜 안에서 우리의 성장을 계속해서 키워준다고 믿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 커질 수 있습니다.” 선재적 은총이 은혜의 집 현관이고 칭의의 은혜가 출입구라면, 성화의 은혜는 인류와 함께 계시고 인류를 위한 목적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거처의 방을 나타낸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새로운 창조를 추구한다고 단언했다. 성화의 은총은 우리가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의 충만함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임재와 능력이다. 웨슬리는 “마음과 삶의 거룩함” 전체를 의미하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관점에서 성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웨슬리는 “기독교인의 완전”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기독교인의 완전함이 그리스도인들이 무지, 실수, 연약함, 유혹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는 거룩함이 완전함의 또 다른 용어라고 확증했다. 그러므로 성화는 사랑 안에서 온전해지고 죄에 대한 욕망을 제거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장정이 명시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는 나누어지지 않지만, ‘선재적 은총’으로서 구원에 앞서며, ‘칭의의 은혜’로 지속되며, ‘성화의 은혜’로 결실을 맺는다.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온 우주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역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항상 일하고 계신다.

은혜 속에서 성장

은혜에는 선물과 응답이 모두 포함된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다. 칭의의 은혜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에 통합시키며, 온전함을 향한 여정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성화의 은혜는 지속적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하고 우리 마음과 행동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퍼뜨린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누구도 저항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창조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은 보편적이고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와 역사하시는 일에 저항할 수 있다. 화해하고 변화하라는 초대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당시의 칼빈주의자들과 달리 웨슬리는 우리가 은혜에 대한 응답을 상실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타락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질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없이 남아있고, 계속 축복하고 유지하며, 우리를 온전함과 구원을 향하여 손짓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와 세상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우리의 삶을 열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성장한다. 은혜 속에 자라고 제자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충만한 은혜를 향한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분은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신다. 우리를 해방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심으로써 우리가 새로운 창조를 향해 살아갈 수 있게 하신다.

초기 감리교인들은 ‘연합신도회의 총칙’을 실천함으로써 마음과 삶의 성결을 추구하는 데 헌신했다. 신도회를 계속하려면 회원들이 구원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야 한다. “첫째,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 것이며, 모든 종류의 악을 피할 것이며… 둘째, 선을 행할 것이며 자기 능력에 따라 최대로 자비로워야 할 것이며, 기회가 있을 때에 모든 가능한 선을 행하여야 할 것이며,…셋째,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집회에 참례하여야 할 것이다.” (장정 2016, ¶104)

감리교인들은 속회나 소그룹으로 모여서 “사랑으로 서로를 돌보고”,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고, “은혜의 수단”을 실천함으로써 은혜 안에서 성장하도록 서로를 돕는다. 이러한 은혜의 수단은 총칙에 명시되어 있다.

  •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중 예배
  • 읽거나 강해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모임
  • 성만찬 예식
  • 가족 혹은 개인 기도회
  • 성경 연구회
  • 금식 혹은 금욕

추가적으로, 존 웨슬리는 자비와 연민의 행위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대화(Christian conferencing)”를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방법으로 밝혔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우정 속에 성장해 가는 선물이다. 이러한 수단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헌신을 표현하고 우리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우리의 삶을 열게 된다. 이러한 수단은 우리가 은혜로 양육되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자라게 하는 방법이 된다.

결론

은혜에 대한 웨슬리적인 이해와 경험의 완전함은 찰스 웨슬리의 사랑받는 찬송인 “하나님의 크신 사랑(Love Divine, All Loves Excelling)”에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늘로서 내리사 우리 맘에 항상 계셔 온전하게 합소서

나의 주는 자비하사 사랑 무한하시니 두려워서 떠는 자를 구원하여 줍소서

걱정 근심 많은 자를 성령 감화하시며 복과 은혜 사랑받아 평안하게 하소서

첨과 끝이 되신 주님 항상 인도하셔서 마귀 유혹받는 것을 속히 끊게 하소서

우리들이 거듭나서 흠이 없게 하시고 주의 크신 구원받아 온전하게 하소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천국까지 이르러크신 사랑 감격하여 경배하게 하소서

영문으로 읽기(Read in English)


케네스 엘 카더 감독(은퇴)은 내쉬빌과 미시시피 지역에서 감독으로 섬겼다. 그는 은퇴 후 2004년 9월 듀크 신학교에서 목회 교육 실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채핀에 거주하며 메모리케어 병동의 병원목으로 봉사하고 있다. 2016년 11월~12월에 인터프리터(Interpreter)에서 최초로 기재되었다.

오천의 목사는 한인/아시아인 리더 자료를 담당하고 있는 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이다. [email protected]나 615) 742-5457로 연락할 수 있다. 

United Methodist Communications is an agency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2024 United Methodist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